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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치과 원장의 고백"을 읽고

세상사는 이야기

by steve vai 2011. 9. 1.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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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슈화되던 글들이 사라지는 경우들이 있는 경우에 블로그에 스크랩해 놓는 경우가 있다.

고백성글이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서 글을 올려본다.



본인의 모친은 치아가 좋지 않아서 치과를 꽤 많이 다니셨던 편이다.

치과 치료가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은 다른 진료에 비해서 과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

그렇게 치아는 별로 아파 본적이 없지만 지금 사랑니가 아픈 이 시점에서 이런 이슈는 짜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유디치과를 아내를 통해서 알게되어서 1년에 한번 스케일링을 하라고 오라고 권유함에도 불구하고 자주는 가지 않았다.

문제가 되면 그때해도 된다는 주의고 염세주의적이지는 않지만 (다소 낙천적이라고 해두자 ...) 어머니를 닮지 않아서 치아는 꽤 건강하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옆집에 살고 있던 동네 아저씨가 치과의사 분이고 지인들 중에 치과의사가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가족들이 치과를 갔다가 왔을때마다 집안에 통장의 잔고는 많이 줄었다는 기억말고는 ...

그렇게 불만이 없었다.



이제 치과 뿐 아니라 의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일단 어느 정도의 사명감 같은 것은 있어야 하지 않나싶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자격이라는 것을 취득해야지 되는 구조이다.

누가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알면서 발암 / 유해 물질을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문제가 있고 생각을 한다.


경영 관련 솔루션을 하면서 개인이나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네트워크 치과라면 그 역시도 기업이라고 하면 "원산지 증명"이나 "유해 물질"을 사용했을때의 파급효과정도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푸념하듯이 쓴 의사 개인의 글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성장과 사이즈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어느 기업형 병원에 대해서는 더 기분이 좋지 않다.

또한, 남을 진료하고 치료한다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들이 사회에 보이는 이기적인 행태들이 이해가 안 간다는 것 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에서 네트워크 병원과 같은 형태로 더 좋은 시스템으로 보건소나 의사를 만드는 길 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재료들을 제 값에 받아서 사용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나 생각을 한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잘하는 의사에게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주면 되지 않겠는가?


소신을 다해서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일하겠다고 하는 의사에게 충분한 수익을 보장을 시켜주는 극단적인 방법을 가져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치과 뿐아니라 의사들이나 병원들의 문제가 있을때 마다 정부는 도대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어린 학생들을 평가하고 그렇게 좋지도 않을 잣대의 시스템을 만드는데 그렇게 막대한 돈을 들이지 말고 ...

좋은 의사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정찰제, 세제해택을 주고, 다른 의사에게 검진 기록을 오픈 할 수도 있는 시스템을 같추어서 상호감시를 하면 되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항생제 덜 쓰는 병원 뭐 이런 것처럼 ... 자율 경쟁을 유도한다? 글쎄 ...)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


적어도 의사자격증이 국가공인자격이라면 그렇게 해야하지 않는지?

개원하기가 힘들고 소신을 지키기가 힘들다면 소신이 있고 개원의 부담이 없는 쪽으로 나라가 도와줘야 한다.

변명이다.



하지 않고 엉뚱한 쪽으로만 갈려고 한다면 관리를 할 수 밖에 ... 아무도 의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꿈이 있고 재능이 있고 보람(봉사가 아니고 정당한 대가를 누린다는 의미이다. 이익없이 퍼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주었으면 ... )을 찾을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믿고 싶을 뿐 ...


[유디치과 원장의 고백]

작성자 : 에어조단(디씨인사이드 ID)

출처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50&no=26423

지난 토요일... 제게 할 말이 많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한 동기들에게 느껴진 뭔지 모를 어색함...이제는 공개적으로 제 이름이 불법네트워크 치과의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이 마당에 더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기에 개인병원을 접고 유디치과로 터를 잡은 저의 상황을 두서없이 정리해봅니다.

어찌보면 저의 변명에 지나지 않을 이야기지만 가감없는 제 솔직한 이야기라 받아들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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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오랜 침묵이 약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침묵이 이기적인 무책임으로 여겨질 수 있는 상황으로 악화될 것 같아서 두서없이 이야기를 풀어본다.

행여 이 글이 내가 결단을 내리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해명이나 변명의 글로 받아들여지게 될까봐, 혹은 어설픈 표현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꼬투리가 되어 침묵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가 없지만, 그저 내 개인적인 삶의 소신이요 선택이며, 거기서 불거진 별난 삶의 변명 정도로 여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TV와는 거리가 멀기에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지만, 요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무척이나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치과의사다’ 골프와 악기 등 내 삶에 사랑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치과의사다. 1985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 면허증을 받은 이래로 난 오랜 세월을 치과의사로서 살아왔다. 그것도 아주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어떤 면에서는 바보 같기도 한 모습으로 살아온 치과의사다.

1991년, 군의관을 마치고 장위동 언덕배기에서 자그마하게 개원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융자를 내고 리스를 내서 병원을 개원하고, 병원 운영에 대한 선배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지냈던 이삼년간의 모습은 참으로 평범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겪은 삼일 정도의 세무조사, 소득신고액을 늘리라는 것이 결론이었지만 그 사흘 동안 나는 죄인 취급을 받은 것 같은 치욕적이 느낌이 들었고, 어쩌면 그것이 치과의사로서의 내 삶에 큰 전환점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1996년 4월 1일부터 2011년 4월 14일까지, 15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의도에서 개원의 생활을 하면서, 내가 스스로 다짐하기도 하고 나와 적게는 칠년 이상, 길게는 십여 년이 넘게 함께 지내온 세 명의 직원들에게 가끔 이야기하던 것이 있었다.

‘내가 장사를 하게 되거나, 아니면 내가 환자들에게 장사 취급을 받게 되는 때가 바로 내가 병원을 문닫는 날이다’

IMF가 와도,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매 해마다 결과를 보면 진료한 환자들의 수는 꾸준했고, 전체적인 수입규모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일정했다. 하지만 세상적인 변화에 담을 쌓고 살아온 나는 가끔 들려주는 동기들이나 후배들의 병원 경영에 대한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시 말하라고 해도 나는 치과의사다.

내가 사랑니를 수술해준 환자들로부터 사랑니는 보험이 안된다면서 일부 치과에서 일반 수가 적용하는 것처럼 비싼 수가를 받았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부자가 되었을게다.

다른 병원에 갔더니 빼래요... 하는 치아들을 큐렛하고 플랩하고 근관치료하고 레진으로 스플린트 하고... 뿌리 하나라도 살리려고 헤미섹션하고... 사랑니 뽑아다가 발치한 어금니에 심어주고... 그렇게 몇 년이라도 더 자기 치아로 쓰게 하면서 미련한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나도 건물 하나는 샀을게다.

‘여의도까지 가기 멀어서 가까운 어떤 치과를 갔더니 치료할 것이 몇 개. 견적이 얼마라는데...’ 하는 환자를 검진하고나서, 지금은 치료할 것이 없는데, 정기 검진하러 다시 오세요... 하면서 돌려보낸 환자들을 다른 곳에서 낸 견적대로 치료를 했다면...

지대치 망가져 내원한 국소의치 환자 의치 수리해서 옆 치아에 또 걸어주고, 또 고쳐주고...

“맨날 이렇게 고쳐서 쓰게 해주고 새로 안하면 원장님은 뭐 벌어먹고 살아요...”라는 환자의 그 한마디를 내가 누리는 최고의 보람으로 느끼지 않고 ‘새로 하셔야 해요... 뜯어내셔야 해요...’ 라는 말을 조금만 더 많이 했더라면...

얼마나 더 이야기를 해야 하랴. 지금도 수많은 원장님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치과의사로서의 양심을 지키며 진료를 하고 계실 줄을 믿기에 이런 넉두리가 부끄럽기도 하다.

수년 전 아침에 네 명의 세무원이 들이닥쳐서 리셉션을 장악을 하고 열흘간의 세무조사를 한다는 공문을 내밀 때에, ‘내가 이 한 순간을 위해서 지난 십여년간 한 푼도 어김없이 세금 신고를 해왔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당당할 수 있었던 나는 분명 병원 경영이나 절세나 이윤 추구에 있어서는 자격이 없는 개원의인 것 같다. 열흘간의 세무조사를 마친 후에 나흘 더 조사를 당하고나서의 결과물로 병원에 걸리게 된 성실납세자 표창패가 그걸 말해준다.

병원의 흑자 운영을 위해서는 직원도 적당한 연차가 되면 물갈이를 하고, 골드 값이 많이 올랐으니 포세린이나 레진으로 대체를 하고, 어지간하면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로 돌리고, 등등...... 효율적인 병원 운영과 이윤 창출을 위해 내게 들려지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내게는 반감만 가득 안겨주었다.

갓 이십 세에 우리 병원에 찾아와서 시집도 가고(내가 주례도 서주었다) 애도 낳고 십여년을 넘게 이십대의 젊은 청춘을 함께 보내고 삼십줄에 접어든 직원을 어떻게 경영상의 문제로 정리를 하라고...

지난 구 년간 함께 일하고 결혼해서 자녀를 둘 낳고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을 경영상의 문제로 정리를 하면 그 직원은 어떻게 살아가라고......

병원을 꾸려나가는 것은 내가 돈을 벌기도 하지만 나로 인해 직원들도 직장을 얻고 함께 삶을 영위해나가는 공동체가 아닌가.

참 할 이야기가 많다.

병원을 경영하고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개원의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윤리...

아무리 의사는 없어지고 장사만 많아진다는 것이 의료계의 현실이고, 지금의 의료보험 시스템과 환경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도입해야 하는 현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 마음에 용납이 되질 않으니......

각설하고, 지난 이삼년간 세금 소득세에 대한 세금을 환급받았다. 세상이 좋아져서 요즘은 그렇게 세금도 돌려주고 그런다. 중간예납한 것보다도 낼 것이 적단다. 당장은 세금을 낼 것이 없이 오히려 돈을 받으니 일단 기분은 좋았다. 총 수입은 신기할 정도로 매 년 비슷한데 지출이 무척 많이 늘었다.

인건비, 금값, 재료비, 기공료 등등... 내가 허리를 졸라매는 것도 한계가 있고, 직원들 월급도 지난해에도 동결이었는데...

2010년도를 마무리하면서 직원들과 병원 운영에 대한 대책을 세우며 몇 가지 처방을 냈다.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야 월급도 올려줄거고 나도 살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가능한 케이스는 골드를 절약하고 포세린이나 테세라나 레진으로 돌리자.

골드도 pt만 고집하지 말고 A-type도 도입을 하고, PFG는 가능한 하지 말자.

누가 봐도 빼라고 할 만한 것은 미련하게 애쓰지 말고 우리도 빼고 임플란트로 하자.

치료해야 할까 안해도 될까 고민스러운 우식증은 50:50이면 치료하는 방향으로 들어가자.

새로 해야 할만한 보철물은 수리하기보다는 새로 하기를 권하자... 등등

그렇게 적용을 하기로 하고 2011년 1월 한 달이 흘렀다. 그로스가 30% 이상이 늘었다.

설연휴도 있고 진료 날짜도 별로 없는 2월이 흘러가는데, 2월은 그 이상이 늘었다.

돈을 벌려고 마음을 먹으니까 돈을 벌기가 이렇게 쉬운 것을...

하지만 그 두 달이 지나면서 마음 한켠에 무거워지는 그 무엇을 지울 수가 없다. 무릎 꿇고 기도를 해도, 기도원에 들어가 밤을 새워 부르짖으며 그런 내 모습을 합리화시키려고 해도(이런 말을 쓰면 누군가 또 개독이니 뭐니 할까 걱정이다),지난 이십여 년을 고집해온 치과의사로서의 내 모습과 내 양심은 지난 두 달의 내 모습을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치과의사가 아니라 장사가 되면 병원 문을 닫겠다’는 말을 해왔던 말 대로 2월이 거의 흘러가는 어느 날 직원들에게 선언을 했다. 인수할 사람이 있으면 인수를 시킬 것이고 없으면 그냥 문을 닫을거라고.

백퍼센트가 아니면 다 똑같다. 죄인이면 죄인이지 누가 누구보다 덜하다고 죄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내가 고수하던 치과의사로서의 모습을 잃고 돈이 목적이 되어 진료 방침을 바꾸었으니, 내가 비난하고 질시하던 일부 치과의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병원 인도 가격에 대한 문의를 했다. 기자재는 중간에 보충하고 교체한 것들도 있지만 대략 중고가로 따지자면 대략 삼천 정도, 인테리어는 완전히 새로 한 지 만 사 년, 매출 규모와 환자 규모로 따지자면 권리금 따져서 이억 내외로 책정하면 되겠다고 한다.

대치협회 광고란에 그냥 삼천으로 올렸다. 기자재와 집기류에 대한 중고 가격만 책정을 한 가격이다.

나는 장사치가 아니다. 장사치처럼 환자가 몇 명이고 수입이 얼마인지 계산을 하면서 권리금을 따지기 싫었고, 다만 환자들을 놔두고 무책임하게 떠나는 것이 죄송스러워 들어오시는 원장님이 내 환자를 성실하게 잘 관리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결단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언제 다시 진료를 하게 될른지, 아니면 아예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접을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연락이 왔고, 인수할 원장이 오픈할 수 있는 4월 중순까지만 진료를 하기로 했다. 한 달 반 남은 기간을 새로운 치료 들어가는 것을 모두 중단하고 마무리에 전념을 하면서, 난 내가 여의도에서 개원을 하면서 스스로 공언했던 결심대로 치과의사로서의 십오년과 장사로서의 이개월의 기간을 정리했다.

이것이 내가 병원을 정리한 대략의 이야기다.

그렇게 병원을 정리한 내가 얼마 되지 않아 어떻게 유디치과 XX지점의 원장으로 갔는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말 한마디가 무척 조심스러워진다. 날이 서있는 많은 시각들이 더욱 날을 세우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꼬투리를 잡아 내 말의 본질이 왜곡되고 자칫 쓸데없는 논란의 소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 하는데 그럴 재주가 없다.

3월 초에 병원 인도 계약을 하고나서, 4월 중순에 폐업신고를 마치고나면 무조건 기약 없이 한동안은 쉬고자 했다. 3월 한 달의 시간을 보내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나의 남은 오십대는 환자들을 위해 좀 더 진료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 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나의 것을 나눌 수 있는 달란트는 아직은 치과의사로서의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환자들을 위해 정당한 진료를 제공하면서 그에 대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고 댓가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면서 의사를 구하는 몇몇 곳을 접촉하던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 내가 몸담게 된 유디치과이다. 저렴한 수가와 과잉진료로 인해 욕을 많이 먹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3월 초만 해도 이렇게까지 모든 치과의사들의 적이 되어있고, 어제 본 SIDEX의 어느 부스에 걸려있는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까지 올라가 있는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 내가 그런 상황에 눈이 어두워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칫 나를 변호하기 위한 이야기, 혹은 더 나아가서 유디에 대한 선전이 될 것만 같아 내가 유디와 접촉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한 부분에 대한 말은 생략하고싶다.

다만 5월 초부터 유디치과 XX지점의 원장으로서 진료를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두어 달을 보내면서 나는 내 명예를 포기한 대신에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얻어가고 있다. 경제적인 부분으로부터 진료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 내가 유디에서 일하기를 결정하면서 원하고 의도하던 긍정적인 측면이 바라던 그 이상으로 성취되어가고 있다.

경영이 날로 어려워져가는 요즘의 상황에서 주위에 있는 치과에 대해서는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저렴한 수가로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내가 갈고 닦은 의료기술을 제공할 수 있음을 나는 감사하고 있다. 의사를 위해 환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해 의사가 존재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은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나의 양심이기 때문이다.

돈을 더 벌기위한 과잉진료는 지난 두 달 동안 결단코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진료 첫 날부터 모든 스텝들에게 내가 강조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의사는 프렙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위생사들이 한다는 것도 비난의 이유 중의 하나인 것으로 아는데....

비록 진료실이 많고 스텝이 많기는 하지만, 나는 내가 여의도에서 스텝들에게 맡겼던 부분조차도 가능하면 지금은 내가 해결하고 있다. 소위 불법진료라고 일컬어지는 진료실에서의 어떠한 행위도 나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각설하고, 만일 내가 이제까지 고수해온 치과의사로서의 환자에 대한 양심을 버리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면 아마도 그때가 바로 내가 새로이 몸담은 XX유디치과를 떠나게 되는 날이 될 것이다.

유디에 대한 수많은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지금 치과계가 떠들썩하지만, 그것은 내가 확인해보지도 못했고 또한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XX 유디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음을 나는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무슨 개소리냐고 욕을 퍼붓겠지만, 지금 내 소신대로 이끌어나가고 있는 부분이 오히려 다른 유디 지점이 바라보고 개선해야 할 롤모델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여의도에서의 오랜 세월 동안 세상과 동떨어져서 지냈던 둥지를 떠나 가장 시끄러운 세상 한 가운데에 들어와 내 소신과 소명을 펼치며 지난 두어 달을 보냈다. 적어도 어제 SIDEX에 참석하고 동기모임을 갖기 전까지는 어느 곳에선가 나를 향해 쏘아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비난의 화살을 애써 등지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내가 유디에 몸담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기들에게 누가 되고 동문들에게 누가 되고 보철과 식구들에게 누가 되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간접적으로 듣고 있었고, 어제 SIDEX 후에 만났던 동기들의 말없이 던져지던 그 분위기로 다시금 직감할 수 있었다. 적어도 석 달, 혹은 반년을 보내고 나서 유디에서의 새로운 출발과 내가 진료하는 실상이 이렇다는 결론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올라가있는 이 시점에서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함을 초래할 것이기에 조금은 이르다 싶게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남겨본다.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고 자신이 살아오면서 지켜온 소신은 목숨만큼이나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나의 소신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나홀로 개업의로서 지낼 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적어도 이제는 그만한 대가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이상으로 더 많은 환자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도 내가 이 길을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이다. 더 이상 내 수입을 위해 진료를 타협하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 혼자 개업하면서 사용해보지 못했던 고가의 질 좋은 기구와 재료들이 풍부해서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풍요로움도 요즘 진료를 신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비록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 진료 철학에 대한 병원 스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고, 많은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아가며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하고 있다. 그렇게 얻은 것들이 많은 반면에 이 길을 걸어가기로 결정하면서 어쩌면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음을 각오했는데, 묘하게도 내가 이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협회장 선거와 기타 여러 가지 여건들이 맞물려서 네트워크 치과의 문제는 극한으로 치닫는 것 같고, 나는 어쩌면 수많은 치과의사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야 할 모양이다. 어쩌면 이젠 그 잃은 것들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곳으로 치달은 것 같다.

지난 5월에 XX유디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미 덴트포토에 나에 관한 글이 올라가고 온갖 리플들이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았다.

이 글에 대해서 또 다시 어떤 악의적인 해석과 비난이 쏟아질 것을 각오해야겠지만, 내가 유디에 몸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지켜보던 동기들에게 이렇게나마 변명아닌 변명으로 내 거취를 스스로 알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서 시작한 글이 너무 지저분해져버렸다. 쉽지 않겠지만, 그러나 묵묵히 내가 결단한 길을 소신을 가지고 걸어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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